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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 진관사, 김치양, 천추태후에 대한 이야기, 불교설화

보위에 오른 진수스님

  제 5대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헌애 왕후와 헌정 왕후 두 자매 왕비는 꽃다운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 경종이 살아있을 때부터 언니 헌애 왕후의 지나친 질투심 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헌정 왕후는 경종의 죽음과 함께 궁궐을 나왔다.
  그녀는 개성 성안의 10대 사찰의 하나인 왕륜사에 방하나를 얻어 거처하면서 관음기도를 봉행하였다. 그녀는 비록 과부가 되었지만 그의 젊음은 어느 누구도 뺏어가지 못했다. 언니와 함께 오빠이자 한 남자를 지아비로 삼고 있었으면서도 언니의 강한 질투심 때문에 남편 경종은 그녀의 방을 드나들지 못했었다.
  그녀는 아들 하나 낳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는 게 아니겠는가. 언니 헌애 왕후에게는 '송'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송이 겨우 두 살 때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헌애 왕후는 아들에게 온갖 사랑을 다하고 모든 기대를 걸었다.
  하지마 헌정 왕후에게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그녀는 기도를 하면서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처님 앞에 서곤했다.


  그 무렵 왕륜사 아래 안종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헌정 왕후가 혼자되어 왕륜사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가끔씩 바라보곤 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참 아름다운 여인이야. 아마 이 성내에서는 저토록 미끈하고 잘생긴 미모의 여인은 다시 없을 것이야. 경종이 복이 없는 사람이지. 저렇게 고운 여인을 아내로 두고도 백년해로 하지 못하고 먼저 갔으니. 쯧쯧."
  중얼거리는 남자 목소리에 기도를 하던 헌정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안종이 서 있었다. 그는 젊고 건강한 젊은이였다.

  안종은 진정 미안한 마음으로 허리를 꺽었다. 안종의 태도를 보자 오히려 미안해지는 쪽은 헌정 왕후였다.
  안종은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에 모신 아미타부처님의 모습이 안종을 굽어보고 계셨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 머뭇대고 있던 그에게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헌정 왕후를 한 번 안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군.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원하는 바를 다 들어 주신다고 했으니. 그리고 내 이제껏 부인과 살면서 아직 자식 하나 없이 적적하게 살았는데 헌정 왕후의 몸을 빌어 아들 하나를 낳게 된다면 그 또한 괜찮을 터.)
  안종은 내심 그렇게 마음을 먹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단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왕륜사를 찾았다. 부처님께서 기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하나의 핑계였고 그 속마음은 헌정 왕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헌정 왕후는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송악산에 올랐다. 울창한 숲을 헤치고 후여후여 산에 오른 그녀는 문득 오줌을 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녀는 안심하고 바위 뒤에 앉아 소변을 보았다. 오줌 줄기는 세차게 뻗었고, 마침내 온 개성 성내가 오줌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일어서며 옷을 끌어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눈 오줌이 개성 성내를 두루 잠기게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멍청하게 성내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헛기침 소리와 함께 부스럭대며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웬 노승이 우뚝 서 있었다.
  머리는 삭발을 했지만 가슴까지 내려온 허연 수염이 언뜻 보기에도 평범한 스님 같지는 않았다. 육환장을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단주를 쥐고 있었다. 장삼은 바닥에 끌리듯 주루루 흘러내렸다.
  "에그머니나! 스님이 계셨군요"
  헌정 왕후는 불안했다. 노승이 자신의 소변 보는 모습을 훔쳐보았으리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무 아미 타불 관세음보살"
  노승의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며 헌정 왕후가 물었다.
  "스님은 어디에 계시오며 법호는 어찌되시는지요? 행여 조금전 저의 행동을 훔쳐 보신 것은 아니지요?"
  "훔쳐 본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다가 우연히 봤을 뿐입니다."
  "보셨다구요?"
  헌정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승이 말했다.
  "노승은 묘향산 보현사에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녁 공양을 끝내고 서정에 들었더니 문득 이 산에서 오색찬란한 서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습니다.하여 선정에 든 채로 이곳에 몸을 나타낸 것입니다. 소승이 이제 생각해보니 이는 왕후께서 아기를 가지실 태몽을 꾸고 계신 것이라 봅니다."


  헌정 왕후는 깜짝 놀랐다. 묘향산서 송악까지의 거리도 거리려니와 그 먼 곳에 몸을 나타냈다고 하는 노승의 신통묘술에 열린 입을 다물 줄 몰랐는데,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과 왕후임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태몽이라고 했잖은가.
  "제가 꿈을 꾸고 있었다구요? 그리고 그것이 태몽이라고요? 저는 지아비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사는 박복한 여인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왕후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승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왕후께서는 장차 이 나라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 놓을 훌륭한 성군을 낳으시게 될 것입니다. 부디 옥체 보중하시고 가볍게 처신하지 마옵소서. 부처님께서 특별히 점지해 주시는 아기이니 잘 기르십시오. 훗날 영화를 한 몸에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말을 마치고 노승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한정 왕후는 노승을 부르다 자기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안종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스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안종은 손수건을 꺼내어 헌정 왕후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헌정 왕후마마, 무슨 좋지 않은 꿈이라도...?"
  헌정 왕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안종은 절에 올때마다 소용되는 물품들을 가지고 왔으며, 헌정 왕후도 그 답례품으로 소장하고 있던 비단 병풍과 도자기 등을 선물하곤 했다.
  하루는 헌정 왕후가 안종에게 말했다.
  "저는 아이를 갖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겠어요?"
  그녀의 음성은 젖어 있었다. 꼭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그녀의 갈구하는 욕망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어다. 안종은 짐짓 딴청을 부렸다.
  "헌정 마마 그것이 어찌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팔자를 고치시면 되겠지요. 개성에는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중매를 서드릴까요?"
  하지만 안종의 손은 이미 헌정 왕후의 손을 아래 위로 포개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손이 안종의 두 손바닥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불꽃이 일고 있었다.
  "안종"
  헌정 왕후가 와락 안종의 품으로 달려 들었다. 
  "안종! 꼭 껴안아 주세요. 그동안 너무 외로웠어요. 안종! 사랑해요 안종!"
  안종은 헌정 왕후를 꼬옥 껴안았다.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탁자 위에 앉으신 미타, 관음, 세지의 삼존불이 두 사람을 축복하고 있었다.
  초겨울의 바람이 문지방을 넘어 들이닥쳤다. 밖에서는 풍경이 요란스레 울어 대고 있었다.
  "헌정! 나도 그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오? 이제 우리들의 멋진 미래를 설계합시다. 헌정. 내 말 듣고 있소?"
  헌정 왕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약간 끄덕거렸다.
  "사랑하오, 헌정! 당신, 아기를 갖고 싶다고 했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러면서 안종의 허리를 감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슴이 참 넓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행복감에 젖어들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녀는 헌애 왕후와 함께 쌍둥이처럼 자랐다. 두 자매가 너무도 다정하고 또 미인이어서 부모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흐믓해 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 황보씨는 언니인 헌애보다도 헌정을 더 사랑했다. 헌애는 시샘 덩어리인데 비해 헌정은 마음이 꽤나 넓었고 언짢은 일에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헌정은 어린 마음에도 그들의 결혼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왕실에서는 당연히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배워 왔기에 그렇게 섭섭하지도 않았다.
  섭섭하다는 느낌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시샘이 많은 언니였지만 그래도 말 동무가 되어 주었고 때로는 동생인 헌정을 위해 거친 일 같은 것은 앞을 가려주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곁을 떠난다는게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언니 헌애가 시집을 간지 5년, 헌정의 나이도 열세살이 되었다. 경종은 헌정을 제2왕후로 맞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으로 경종의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왕실에서 헌정을 제2왕후로 맞이해야 한다는 강력한 제의가 있었으므로 그를 받아들인 것 뿐이다.


  경종은 헌정을 부인으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항상 헌애 곁에서만 맴돌았다. 헌애의 질투심이 경종으로 하여금 헌정과 가까이 할 수 없게끔 만들었고, 또한 경종은 질투심이 강한 헌애에게 매력을 느꼈다. 경종은 늘 생각하고 말했다.
  "너무 지나쳐도 문제가 있겠지만 여자가 질투심이 없다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질투심이 없다는 것은 무관심이다. 사람 사이에 무관심처럼 무섭고 황당한 것은 없다.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 미움도 사랑이다. 정말 미워하는 것은 무관심이다."
  두 사람은 깊이 사랑했지만 헌정은 언제나 외로웠다. 헌애의 감시도 감시려니와 경종은 숫제 헌정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언니에 대한 미움이었다. 가끔씩 경종을 원망해 보려 했지만 그 원망의 화살은 항상 끝에 언니에게 맞곤 했다.


  어느날 경종은 헌애 왕후와 심한 말다툼을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였다. 궁녀의 수를 줄이고 궁녀들과의 만남은 물론 어떤 대화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헌애의 주장 때문이었다.
  궁녀의 관리는 왕후가 책임자였다. 그렇다고 왕후 마음대로 그 숫자를 줄이거나 왕의 행동까지 제약할 권리는 없었다. 왕의 행동이나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대로가 법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제1왕후라 하더라도 행동과 언어까지 제약을 하고 질투를 하는 데는 경종으로서도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경종은 홧김에 헌정 왕후의 별궁으로 향했다. 그는 헌정 왕후를 안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헌애에게만 매여 살아온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다. 헌애 왕후 못지 않게 헌정 왕후도 아름답고 매력있고 성숙한 여인임을 알았다.
  그때 헌정은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경종에게 안기면서 그녀 또한 지금까지 언니에게 남편을 빼앗겨 온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는 언니에게만 양보지는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었었다.
  그후 경종은 곧바로 승하했다. 헌정 왕후로서는 그날 밤 경종의 행차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헌애는 헌애대로 헌정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것은 경종이 헌정에게 다녀온 며칠 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에 그 책임은 헌정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 그녀는 경종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남자를 알게 되었고 남자의 넓은 가슴과 억센 팔이 그리웠다. 경종은 만나기 전에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는데 그날 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정말이지 단 하룻밤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헌정은 안종의 품에서 속삭였다.
  "안종! 우리 밖으로 나가요. 여긴 법당이잖아요."
  "그렇게 합시다. 헌정! 오! 내 사랑스런 헌정!"
  두 사람은 자주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헌정은 헛구역질을 했다. 날짜를 꼽아 본 헌정은 비로소 그것이 임신 후에 나타나는 입덧이라는 현상임을 알았다.
  헌정은 안종을 불러 말했다.
  "안종, 아무래도 제가 임신을 한 것 같아요. 헛구역질을 하고, 신음식이 먹고 싶어요."
  "그것 참 잘 된 일이오."
  "잘 되다니요. 우린 지금 부부 사이가 아니잖아요?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과부가 아기를 가졌다고 난리가 나게 될 텐데요. 어쩌지요? 사실은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걱정이 앞서니 말예요."
  듣고보니 헌정의 말이 맞는 듯했다. 안종은 그녀를 소실로 맞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부인에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부인은 의외로 완강했다. 안종의 부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벌써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지내온 터요, 또한 남편 안종의 명예를 위해서도 떠벌릴 일이 아니었기에 참고 또 참아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안종이 그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배었다는 데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꽤나 관용스런 여자였다는 생각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부인은 남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남녀관계에 대한 배신감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장래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 있었다. 언제 그녀 자신이 제 2선으로 밀려나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안종의 부인은 길길이 뛰었다. 도저히 임신만큼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애를 지우지 않으면 갈라서자고까지 했다. 안종은 부인을 달랬다. 때로는 협박도 했다. 부인이 그토록 아이가 없어 적적해 하던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냐고도 했다. 안종보다 부인이 더 아이를 원하기는 했었다. 심지어 부인은 안종에게 양자를 들이자고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부인은 완강했다. 양자를 들이는 일은 남편의 외도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남편의 씨앗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며 기를 수가 있다는 거였다. 오히려 남편의 친자식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 이상은 모두 부정한 관계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기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몇 달이 흘러갔다.
  고려 조정은 경종이 뒤를 이어 경종의 친동생이던 성종(981--997 재위)임금이 즉위했다. 경종의 병이 악화되자 위를 동생에게 넘기고 며칠 뒤 경종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안종의 부인 측근들이 고소를 하여 조정에 알려졌고 성종은 안종을 제주도로 귀양을 보냈다. 성종에게 있어서 안종은 숙부였지만 공적인 입장에서는 신하이기도 했다. 안종은 하는 수 없이 귀양길에 올랐다.
  또한 안종의 부인은 안종의 방 앞에 섶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헌정 왕후는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왕륜사에서는 스님들이 헌정 왕후를 간호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헌정 왕후의 친정에 연락을 취하고 조정에도 알렸다.
  그녀는 만삭이 된 배를 부여안고 궁으로 들어가는 가마에 올랐다. 가마가 왕궁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녀는 갑자기 산기를 느끼면서 가마를 세우게 했다. 시녀들이 달려오고 하여 아기를 낳았으나 그녀는 산고를 이기지 못해 그 길로 눈을 감고 말았다.


  한편, 헌애 왕후는 남편 경종이 승하하자 두 살된 아들 '송'을 길렀다. 송은 나중에 목종(997--1009 재위)이 되는데,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보니 성격상의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헌애 왕후는 질투심이 많고 포악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녀는 거칠 게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연히 외간 남자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남자 사냥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으며 빈부귀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 잘생기고 건강한 사내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성종도 그의 동생이자 형수인 헌애 왕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했다. 얼마나 외롭고 적적했으면 그러랴 싶었다.
  그러면서 헌애 왕후가 남자 사냥하는 것을 은근히 도와주기도 했다. 그만큼 고려 초기의 왕실은 혹 어느 때에 있어서는 썩을 대로 썩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송이 열여덟 살 나던 해, 성종이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그 자리에 송이 나아가 목종이라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목종은 집권을 하기는 했지만 정치보다는 궁녀들과 놀아나기에 급급했고 정치는 자연 헌애 왕후가 도맡아 했다.
  태후가 된 헌애 왕후는 천추단이란 별궁을 새로 건축하고 그곳에 거처하면서 자칭 천추 태후라 칭했다. 그녀에겐 태후가 되기 전부터 깊이 사귀어 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곧 그녀의 외사촌인 김치양이었다.(고려사에서는 헌애 왕후와 헌정 왕후가 어머니의 성을 따라 황보씨라 했다고 했는데 또 다른 사서에서는 그녀들의 외사촌이 김씨라고 했다.)
  김치양은 헌애 왕후가 사귀어 온 뭇 사내들 중에서도 가장 야성적이고 사내다운 남자였다. 그러나 김치양에게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다. 그것은 헌애 왕후를 이용하여 한몫 단단히 거머쥐겠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김치양은 간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김치양을 가까이 한 헌애 왕후도 그와 힘을 합해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보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태후가 된 헌애 왕후, 즉 천추 태후는 어느 날 김치양을 궐내로 불러들여 누구도 배석하지 못하게 한 뒤 은밀히 단독회담을 가졌다.
  "부르셨사옵니까, 태후마마"
  "어서 오시오. 우리는 지금 둘 뿐이니 사석이나 마찬가지요. 그러니 태후라 부르지 말고 그냥 헌애라 불러주시오."
  "황공하옵니다. 태후마마"
  태후가 교태를 부리며 김치양을 향해 의자를 당겨 가까이 갔다.
  "아이! 그렇게 부르지 말래두."
  김치양이 알아차렸다는 듯 태후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그녀를 번쩍 안아 침소로 향했다.
  둘은 새로운 역사를 진행했다. 김치양과 태후와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그들은 항상 낮 시간을 택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남의 의심을 불식시키기에 좋았기 때문이었다.
  천추단은 그러기에 태후의 영이 없는 한 그 어느 누구도 문을 두드릴 수 없었으며 설사 임금이라 해도 그곳만은 신성불가침의 처소였다.
  목종은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태후와 김치양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후가 너무나 완강했기 때문에 왕이 되어서도 태후의 사생활은 특별히 보호했고, 자신도 거기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목종은 김치양을 내쫓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신하들의 원성과 상소가 빗발치듯 했기 때문이었다.
  "주상전하, 김치양은 간교하기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속히 내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염려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주상전하. 신이 알기로도 그는 태후와 모종의 모의를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전하"
  "전하, 전하께오서는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이옵니다. 사사로운 정에 매여 국사를 그르치지 마옵소서."
  "황공하여이다.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대신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목종은 부복한 신하들을 둘러 보며 말했다.
  "짐이 어찌 공과 사를 분간하지 못하겠소. 하지만 태후는 짐의 모친이며, 김치양은 태후가 가장 아끼는 인물인데 어떻게 그를 내칠 수 있겠소. 경들은 들으시오. 내 비록 보위에 올라 국사를 논하는 임금이 되었지만 임금이기 이전에 어엿한 한 인간이며 인간인 이상 어머니를 마음 상하게 하는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소. 그러니 경들은 이 일을 다시 거론치 마오."
  대신들의 직언은 다시 시작되었다.
  "전하 진정한 효도는 어머님으로 하여금 바른길로 가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 하옵니다. 전하. 우선은 마음이 상하시더라도 장래를 위해서는 일깨워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도 부모를 바른길로 인도함이 가장 큰 효라 하였습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통통촉초하하시시옵옵소소서서..."
  목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들 하시오. 그만들 하라 하지 않았소. 다신 짐 앞에서 태후와 태후에 관계된 일들을 거론하지 마시오. 어험."
  자리를 뜨는 목종을 보며 대신들은 통촉하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는 가운데 태후는 김치양의 아기를 임신했다. 임신을 하고난 태후는 그 사실을 김치양에게 알렸고, 김치양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태후마마, 감축하옵니다."
  "어허, 사석에서는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황공... 헌애, 정말 우리의 아기를 가진 것이오?"
  태후가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얘긴데 내 동생 헌정의 아들 '순'이 지금 궐내에 있잖소?"
  "그렇지요. 지금 태자궁에 있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순을 내쫓을 궁리를 한 번 짜보시오. 순이 있는 한 우리의 아기가 태어난다 하더라도 왕위에 오르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호호호!"
  김치양은 태후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아하! 그러니까..."
  김치양은 태후의 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소근거렸다. 태후는 입을 벌리며 의미 깊은 미소를 살짝 흘렸다.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양이 천추단을 빠져나왔고 태후는 태후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뭔가 큰 일이 한 번 일어나고야 말 것 같았다.
  순의 국호는 대량원군이었다. 순은 눈치가 빠른 소년이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여태껏 눈치 하나만으로 살아온 그가 김치양과 태후의 모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쫓기기보다는 내 발로 걸어나가는 것이 좋겠다. 우선은 몸을 피하고 훗일을 도모해야겠다.'
  순은 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개경 남쪽에 있는 숭교사로 향했다. 숭교사에서 화곡 스님을 은사로하여 머리를 깍고 중이 되었다. 화곡 스님은 순에게 진수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진수스님은 남달리 총명했다. 그는 남들이 10년 걸려 할 공부를 3년 만에다해 마쳤다.
  하지마 진수스님의 총명함은 또 하나의 불씨를 안게 되었다.
  천추 태후가 숭교사에 사람을 보내어 진수스님의 일거 일동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자객을 보내어 암살하려고 까지 했다.
  그때마다 스님들은 방문한 사람들에게 어떤 직감을 느끼고 경계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자객이 오는 날은 하루 전이나 또는 며칠 전부터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시어 암시를 주곤 했다. 암시라는 것이 그냥 어떤 느낌만이 아니었다. 부처님은 몇날 몇시 어느 장소라는 것까지 분명히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진수스님은 땀을 흘렸고 부처님의 암시에 따라 난을 피하곤 했다. 진수스님은 어느 날 화곡스님의 부름을 받고 조실에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큰스님."
  화곡스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스승과 제자로서가 아닌 왕자와 승려의 신분에 의거해 말씀드리지요. 왕자께서는 이곳을 떠나십시오."
  "떠나다니, 어디로 말이오이까?"
  "소승이 이미 연락을 은밀히 취해 놓았습니다. 한양 가까이에 삼각산이 있고 그 산에 아주 조그마한 암자가 있습니다. 현재 내 도반인 진관스님이 주석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 스님은 왕자님의 신분을 잘 모르고 있으니 행여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어서 준비하시지요. 믿을 만한 스님을 뽑아서 모시고 가도록 이미 조처해 놓았습니다."
  진수스님은 숭교사를 떠났다. 한양까지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오랜만에 개성을 떠나는 그는 만행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운수납자의 멋은 바로 이런 데 있었구나. 가능하다면 나는 운수의 길을 계속 걸으리라)
  삼각산 암자에 도착하니 진관 노스님이 반겨 맞았다. 이 암자는 나중에 신혈사라 불리게 된다. 삼각산 자락에 자리한 절은 평평하고 넓은 공간에 아늑하게 서 있었다. 이때 진수스님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어서 오시게, 진수스님. 화곡스님으로부터 자네가 온다는 말을 들었네."
  "큰스님 앞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 업이 두터운 중생입니다."
  진관스님은 화곡스님으로부터 이 젊은 승려가 왕자라는 귀뜸을 받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곡스님과의 약속이 있어서 짐짓 모르는 체했다. 그것이 왕자인 진수스님을 보호하는 길이었다. 원체 어수선한 시절이고 보니 절집 안에 어떤 신분을 갖고 잠입해 들어온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여 왕자라는 신분이 노출된다면 승려나 신도로 가장하여 언제 어디서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관스님은 진수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절은 이처럼 협소하고 누추하기 이를 데 없네. 앞으로 서로 탁마하며 대중들과 잘 어울리도록 하게나."
  진관스님의 친절한 호의에 진수스님은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자란 그는 진관스님에게서 문득 아버지를 느꼈다.
  "우리 아버지 안종도 이 노스님처럼 매우 인자한 모습일 거야. 으음!"
  안종은 그때도 유배지인 제주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천추태후로부터 종신형을 선고 받았었다.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비참했다. 무엇보다 철저한 감시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항상 교대로 너댓명이 감시를 하곤 했다.
  끼니라고 해 보았자 남자 시종이 만들어 주는 것으로 잡곡밥에 반찬 한 가지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3백보 이상 떨어진 곳은 나갈 수 가 없었으며 옷가지는 입고 있는 것 말고는 한 가지가 더 있을 뿐, 그것도 이미 15년 남짓 걸치고 있다보니 성한곳 보다는 누덕누덕 기운 곳이 많았다.
  다만 그에게 허락된 것은 글을 쓰고 서책을 뒤적이는 것이었는데 그도 철저한 검열을 받곤 했다.
  그는 언제나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송도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아들의 이름이 '순'이라는 것과 열두 살에 궁에서 쫓겨난 일, 그래서 개성 성내에 있는 숭교사에서 중이 되어 수도에 전념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또한 헌정 왕후가 순을 낳고 세상을 하직했다고 하는 것도 소식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가끔 혼자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어쨌든 살아만 있어다오. 순아! 중 노릇도 좋고 속인 노릇도 좋다. 아무려나 굳세게 살아다오 내 비록 나라에 죄를 얻고 이곳에 와 있다만 그래도 너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간단다."
  그는 아들 순이 숭교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절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수스님은 진관스님이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총명하고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두루 섭렵한 대종장이었다 하더라도 진수스님은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신체적으로는 숙성한 편이어서 어른 못지 않았지만 아직 코밑이나 턱에 수염이 날 나이도 아니었고 정신연령으로 보더라도 막 사춘기에 접어 든 소년이었다.
  숭교사에 머물 때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했었는데 이곳 삼각산에서는 진관스님을 보며 귀양 가 있다는 아버지 안종을 떠올렸다.
  신혈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가 하는 일은 때때로 진관 노스님을 찾아가 공부한 것을 점검받는 일 외에는공양을 짓고 대중들의 수발을 들거나 땔나무를 하고 빨래를 했다.
  진관스님은 일부러 진수스님에게 잡일을 도맡아 하도록 했다. 주위의 대중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진수스님 자신이 스스로 대중생활에 깊이 젖어들어 왕자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진주는 뻘밭에 떨어져 있어도 역시 진주였다. 진수스님이 신혈사에 머물기 이태, 대중들은 그의 총명함과 언어, 행동에서 보통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진관스님은 수미단, 즉 불단 밑에 지하땅굴을 마련했다. 그리고 믿를 만한 시자 몇 사람을 골라 보안유지에 철저하도록 일렀다. 진수스님은 그 땅굴 속에 갇혀 지내야 했다. 산문밖에는 항상 주야로 망을 보게 했고 드나드는 사람들은 은근히 경계하여 살펴보게하는 진관스님의 배려에 진수스님은 때로 너무나 고마워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땅굴 속에서 또 한 해가 가고 진수스님의 나이도 열여덟이 되었다.
  한편 조정은 조정대로 한참 회오리바람을을 일으키고 있었다. 목종은 천추 태후와 김치양의 눈에 띄는 부정부패로 인해 골치를 앓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들의 방탕한 생활이 목종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고, 급기야는 그로 인해 심장병에 걸렸다.
  목종도 천추 태후의 아들이었다. 하지마 김치양에게 푹 빠져 버린 천추 태후는 김치양과 모반을 기도했다. 그러나 강조가 이를 알고 미리 선수를 쳐서 천추 태후와 김치양을 제거하고 목종마저도 폐위시켰다.
  강조는 정변의 공신들과 논의한 끝에 숭교사를 찾아 화곡스님에게 순을 보위에 나아가게 한 사실을 얘기했다.
  "그래서 '순'을 찾으러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화곡스님이 말했다.
  "그분은 지금 불제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소승이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왕위에 나아가지 않으려 하실 것입니다."
  "아무튼 일러 주십시오. 그리고 어지러운 고려 조정을 생각하시고 불안한 백성들의 위해서 스님께서 꼭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리지요. 대량원군 순 왕자께서는 지금 삼각산의 조그마한 암자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의 법명은 진수라고 하지요. 소승이 그 절의 조실인 진관스님에게 서찰을 써드릴 터이니 갖고 가서 그 스님에게 드리면 알아서 안내해드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화곡스님"
  화곡스님은 지필묵을 갖추어 진관스님과 진수스님에게 각각 편지를 썼다.
  왕을 모실 일행이 삼각산 신혈사에 이르러 화곡스님의 서찰을 내보이자 진관스님은 일행을 지하땅굴로 안내했다.
  "전하! 어서 보위에 나아가소서. 그간 저희가 불충하여 재대로 모시지 못하온 죄 한없이 크나이다."
  진수스님은 서찰을 읽어 보고서야 상황을 짐작했다.
  "나는 이미 불문에 몸을 담고 불도를 닦기 시작한 지 여섯해가 지났소. 부처님은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못할망정 불문을 떠나 시끄러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소"
  "전하! 하오나 조정과 백성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신 등이 알고 있기는 불법이란 출세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보위에 오르신 뒤 이 나라 불교를 위해 힘을 기울이셔도 늦지 않은 것이옵니다. 부디 가마에 오르소서."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진수스님은 승복을 벗고 그들이 준비해 온 곤룡포를 걸쳤다. 이제 그는 겉으로는 완전한 왕이었다. 남은 것은 그를 만천하에 공포하는 즉위식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진관스님의 깊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작별을 고했다.
  "조실 큰스님, 큰스님의 기지와 배려가 아니었다면 제가 어찌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곳에 오면서부터 화곡 스님과 조실 큰 스님과의 은밀한 기지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습니만 저 또한 두 분들의 뜻을 져버리지 않고자하여 이제껏 짐짓 모르는 체 살아왔습니다."
  진관스님은 왕자가 눈치챘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왕자의 얘기를 듣고서야 역시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있다고 감탄했다.
  왕자는 왕위에 올라 현종이라 하였고 그가 머물던 땅굴을 신룡굴, 절 이름을 신혈사라 고쳐 부르게 했다. 그리고 신혈사 인근에 대가람을 세워 진관스님으로 하여금 머물게 하고 스님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부르게 했다.
  진관사는 현재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삼각산 북쪽 기슭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본사 조계사 직할사암이다. 고려와 조선을 통해 숱한 질곡의 역사를 견뎌온 진관사는 6.25때 나한전을 비롯 3동만 남기고 전소된 것을 1964년 최진관 비구니스님이 부임하면서 도량을 새롭게 가꾸어 현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나한전, 독성각, 칠성각, 홍제루, 종각, 일주문, 선원, 큰방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에 봉안된 본존불은 현종이 은거할 때 모셔져 있던 불상으로 현종을 구해 주었다하여 비록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으나 깊은 깊은 역사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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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서울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동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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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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