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50
250*250
728x90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불국사 창건 설화, 불교설화

 

불국사 전경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모두 여덟 개의 국보를 비롯하여 수많은 보물과 지방문화재, 중요문화재 등을 간직한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27년(540)에 처음 창건된 이래 진흥왕 36년(575)에 중창을 거치고 경덕왕10년(751)에 재상 김대성이 국가의 부흥과 부모의 행복을 위해 전당과 요사 70여 채를 짓고 석가탑,다보탑,청운교,백운교 등 27개의 석조물을 세워 어엿한 대사람이 되었다. 2천여칸이 넘는 거대한 사찰이 된 것이다.
  이 사찰은 신라의 장인들이 세운 게 아니고 아사달이라는 백제의 유명한 석공이 공사를 도맡아 했다. 아사달은 백제의 조정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아사달은  아사녀라는 아내를 두고 있었으나 지엄한 왕명을 어길 수 없어 홀로 떠나와 불국사 중 창불사에 전력했다.

 


  지아비를 떠나 보내고 홀로 남은 아사녀는 남장으로 변복하고 백제의 경계를 넘었다. 백제의 수도 공주에서 서라벌까지는 8백여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그녀는 배고픔과 목마름도 잊었다. 오로지 남편인 아사달을 만난다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보름 동안을 걸었지만 아직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사달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죽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절대로 중도에서 죽어서는 안돼. 어떻게든 아사달을 만나야 해.'

 


  아사녀는 다시걸음을 재촉했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냇물을 건너면서도 거기서 아사달을 보았고 녹음이 우거진 산길에서도 떠오르는 것은 아사달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사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아사달이 없는 세상은 어둠이었다. 그녀는 두 살위인 아사달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온 지 석 달 만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신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이 들 대로 들어 있었다.


  아사녀는 그험한 길을 걸어 드디어 서라벌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사달이 중창을 맡고 있다는 불국사 앞에 이르렀다. 울창한 소나무 숲 저편에 불국사가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 절에서 공사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 제 남편 아사달입니다. 지어미가 지아비를 만나고자 하는데 구태여 안 될 것은 무엇인가요?"


  병사는 막무가내였다.
  "안 됩니다. 잡인을 금하라는 어명입니다. 여자는 더욱이 안 됩니다. 정 아사달을 보고 싶으면 이곳 연못에 비친 그림자를 보십시오. 당신의 남편 아사달이 석가탑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게요."
  그녀는 연못가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횐구름만 온 연못을 차지했을 뿐 석가탑도 아사달도 보이지 않았다.
  "아사달이 보이지 않아요. 석가탑도 보이지 않구요.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의 흰 구름 그림자만 있을 뿐이에요. 제발 부탁입니다. 지아비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저는 천리길을 걸어 공주에서 예까지 왔습니다"
  "다시 한번 들여다 보십시오. 반드시 석가탑과 그것을 조성하는 아사달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댁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딱한 사정도 이해해 주십시오"
  오히려 병사쪽에서 애원을 해왔다.
  아사녀는 연못가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병사는 오래 서있는 것도 지쳤는지 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불국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석가탑 국보 21호


  아사달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사녀는 아사달을 붙잡기 위해 난간 가까이로 다가갔다. 환영이었다. 그는 아사달이 아니라 불국사의 스님이었다. 
  "스님,저는 공주에서 온 아사녀라 합니다. 저의 지아비 아사달이 이곳 불국사에서 석가탑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번만 만나게 주선해 주십시오."
  스님은 단주를 든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아사녀,그대의 애끓는 심정을 왜 모르겠소.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오이다."
  "때가 이르다니요?스님."
  "연못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시오. 석가탑과 아사달의 일하는 모습이 분명 보일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아사녀는 연못으로 뛰어갔다. 연못을 아무리 들여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그때 스님이 난간에서 말했다.
 "아사녀, 그대가 지아비 아사달을 만나려는 생각은 한낱 오욕에 불과하오. 오욕은 영원한 것이 못 됩니다. 진정 온갖 욕정을 모두 놓아버렸을 때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오. 그러니 자기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는 기도를 계속하도록 가피하셔서 말이오."
  "관세음보살님이 가피?"
  "그렇소. 아사달은 마음을 텅 비우고 지금 석가탑을 쌓는데 온갖 정열을 다 기울이고 있소. 그대도 그대의 지아비 아사달을 따라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시면 가능할 것이오."
  그녀는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힘있게 잡았다.


  "관세음보살님, 제 남편 아사달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지혜로 살피시고 자비로 어루만진다 하셨습니다. 이 가엾은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옵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먼 곳으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아사녀의 주변에서부터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사녀의 주위는 어두웠지만 아직도 먼 하늘은 희끄부레 열려 있었다. 별들이 시커먼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그녀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불국사 경내에 울려 퍼지는 경건한 목탁소리는 소나무 숲에 부딪치면서도 깨지지 않은 상태로 아사녀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그녀는 염불삼매에 깊이깊이 빠져 들었다. 관세음보살이 아사달이 되었다가 관세음보살이 되고 다시 아사달이 되었다. 그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사달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의식은 점점 아스라해졌다.

다보탑 국보20호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고 나면 아사녀는 어김없이 동구 밖으로 나가곤 했다. 아사달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것을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뒷산 절에서는 저녁 예불 범종소리가 들려왔다.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잘거리는 동네 꼬마들의 웃음소리도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송아지가 어미를 찾는 소리가 끼어들기도 했다. 어둑어둑한 저편에서 아사달이 뛰어왔다. 그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초저녁 어둠 속에서도 느낌으로 상대방을 알았다.
  "집에서 기다려도 될 텐데 왜 예까지 나왔소? 누가 당신을 납치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럴 염려는 없어요,아사달."
  "그걸 어떻게 장담하오?"
  "관음경을 읽어 보니까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관세음보살을 인념으로 부르는 사람은 도적들의 난도 피할 수 있고 어떠한 삼재팔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이 된다고 했구요."
  아사녀는 염주를 들어 아사달에게 내보였다. 아사달은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어 아사녀를 꼭 껴안고 입맞춤을 했다.
  "아이,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보긴 누가 보겠소? 이 어두운데. 또,보면 어떠하오. 우리는 부부가 아니오."
  아사녀는 아사달의 넓은 가슴이 좋았다. 그의 굵직한 팔이 그리고 억센 힘이 좋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밤새도록, 아니 평생토록 그 자리에서 안겨 있고 싶었다. 차라리 돌이 되고 싶었다. 
  "집에서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해요. 당신이 일터로 나가고 나면 그 순간부터 오직 당신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당신은 모르실지도 몰라요. 세상의 모든 아내가 다 그렇겠지만 제가 아사달 당신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지를."
  둘은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러다가 한쪽 팔로 허리를 두르고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토록 신날 수 있으랴. 아사달도 아사녀가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오는 게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는 부처님에게 감사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다.
  "난 역시 복이 많은 놈이야. 아사녀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하여간 장가 하나는 잘 간 거야."
  아사달은 멈춰 서서 다시 한번 으스러져라 아사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그런 갑작스런 행동이 전혀 싫지가 않았다.
  "아사녀! 일이 곧 끝나고 나면 당신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오."
  그러나 아사달은 또 떠났다. 이번에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었다. 아사달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사녀는 자신의 생애가 끝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사달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백팔염주뿐이었다.
  "아사달!"
  "아사다알"
  "아사다아아아알!"
  그녀의 애절한 외침은 어두운 숲속으로 퍼져나갔다. 메아리는 없었다. 아사녀는 자신의 외침이 되돌아오지 않는 데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녀는 울리지 않는 메아리를 찾아 나섰다. 숲속을 헤치고 냇물을 건너고 바위를 기어 올랐다. 어디에도 메아리는 없었다.
  그녀는 아사달을 부르며 정신없이 뛰었다. 돌다리를 건너니 파수 보는 병사가 창을 누이며 가로막았다.
  "어디를 가시오?"
  "지아비를 찾아 백제 땅 공주에서 온 아사녀라고 하옵니다. 제 남편 아사달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병사는 완강했다.
  "안 됩니다. 절이 완공되기 전에는 아무도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이는 지엄하신 어명이기 때문이오, 여자는 더더욱 안 됩니다."
  불국사 담을 끼고 돌며 아사달을 찾던 아사녀는 약간 허술한 곳을 발견했다. 그녀는 담을 넘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아사녀는 석공들의 방이 즐비한 가건물로 발자국소리를 죽여 가며 걸음을 옮겼다.
  불 켜진 방이 딱 하나 있었다. 아사녀는 발을 돋우고 창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꿈에도 그리던 지아비 아사달이 거기 있었다. 아사달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맺은 것으로 보아 명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아사녀의 초상화가 세워져 있었다. 백제땅을 떠날 때 유명한 화공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었다. 초상화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사녀는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손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초상화를 보았다. 거기에 눈물은 없었다.
  인기척을 느낀 아사달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쩜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있을까. 아사달은 누가 뭐래도 참 멋진 남자야 어머나! 저 거동 좀 봐. 꼭 황소가 움직이는 것 같애.'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문이 열리고 아사달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사녀!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난 정말 당신이 보고파 미칠 지경이었소. 아무튼 잘 왔소."
  "아사달! 얼마나 찾아 해맸는지 몰라요. 당신을 찾아 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세요? 흐흑, 미워요!"
  아사녀는 아사달의 품에 안기면서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콩닥콩닥 때렸다.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나라에 매여 있는 몸이니 어쩌겠소? 우선은 잊읍시다."
  둘은 오랜만에 뜨거운 포옹을 했다. 기쁨과 슬픔이 그들 사이를 끝없이 왕래했다. 아사녀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은 두 사람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범종이 울었다. 새벽의 어둠을 찢고 밝음을 향해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종을 떠난 소리는 다시는 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따르르르륵, 목탁이 울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밤새 질탕하게 판을 벌이고 놀던 어둠들이 스멀스멀 기어 달아나고 있었다.
  아사달의 얼굴에 불안이 얼핏 감돌았다. 아사달은 한숨을 쉬었다. 왕명만 아니라면 그대로 아사녀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백제 땅이든 신라 땅이든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이라도 좋았다.
 둘이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아사달! 뭔가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아사녀, 나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소. 그러나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오. 곧 석가탑이 완성될거요. 나는 일하러 나가야 하오. 무엇보다 당신을 만난 것이 발각되면 당신도 나도 끝장이오. 그러니 사람들이 다 일어나기 전에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구려. 
  아사녀는 아사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부처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사달이 그녀를 떼어 내며 말했다.
  "아사녀, 나를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견딜 수 없거든 절 앞에 있는 영지를 들여다 보시오. 불국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비친다고 해서 영지라고 한다오. 내가 쌓아 올리는 석가탑도 보일 것이오."
  아사달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아무리 그녀가 잡으려 쫓아가도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사녀는 안간힘을 다해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다아아알..."

 


  꿈이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염불삼매에 들어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것이 아사달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아침이었다. 연못은 그하얀 비늘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연못가로 다가갔다.
  한 걸음 다가가 연못을 들여다 보았다. 다시 한 걸음 다가가 연못을 살펴보았다. 거기 불국사가 비치고 있었다.
  다보탑도 보였고 아사달이 쌓아 올린다는 석가탑도 일부 기단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사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연못 둑에 섰다. 일렁거리는 수면 위로 그녀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 얼굴은 금세 아사달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 아사녀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사달의 환한 얼굴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사녀도 두 팔을 벌리며 아사달을 불렀다. 그의 넓은 가슴과 억센 팔에 안기고 싶었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풍덩."
  "아사다아아아알알알알!".

 


  그녀의 외침이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오고는 다시는 없었다. 연못은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다만 흰구름과 불국사가 비칠 뿐이었다. 아사녀의 그리움과 슬픔과 애절한 외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석가탑은 완성 되었다. 바로 그 시각에.
  아사녀의 죽음을 안 아사달도 연못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아사녀를 부르는 긴 외침이 불국사 경내 구석구석에 메아리쳤다. 
  그 후 석가탑은 영지에 서서 귀를 기울이면 천2백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외침이 들린다고 하는데, 단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들을 때만 들린다고 한다.
 

불국사 영지

250*250
250*250
Posted by 최 샘
,
250*250
250*250
728x90

불국사 창건과 장수사에 대한 김대성이야기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 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단월이 시주하기를..."

  점개스님의 염불 축원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앵무새마냥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축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허공을 맴돌다가는 단월의 집으로 날아들어가곤 했다.

  점개스님은 서라벌 내 흥륜사에서 나온 화주승이었다. 나이는 이제 마흔을 조금 넘을까 말까한 정도였으나 그의 걸음걸이는 노숙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큰스님의 행동거지와 음성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점개스님의 외모와 음성에 경외스런 시선을 보내곤 했다.

  점개스님의 복안장자의 문 앞에 이르니 문을 지키던 하인이 넙죽 절을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큰스님. 오늘은 어떤 복을 나누어 주고 가시렵니까?"

  점개스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하인들에게 말했다.

  "복이라! 암, 나누어 드려야 하구말구. 옛소, 복받으시게나."

  점개스님이 주장자를 날렸다. 주장자가 표르르 날더니 하면 들 앞에 툭 떨어지며 땅에 꽂혔다. 그러자 그 주장자에서 갑자기 새순이 돋더니 순식간에 숲을 이루고 새들이 깃들였다. 하인들은 생전 처음보는 점개스님의 신통력에 벌리니 입을 다물줄을 몰랐다. 그들은 환희심에 들떠 점개스님에게 수없이 절을 했다.

  그러나 점개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무에 손을 댔고 나무는 다시 주장자로 돌아왔다. 점개스님이 말했다.

  "복안장자에게 전하시게나. 밖에 점개라고 하는 한 비구가 화주를 하러 왔노라고. 그리고 이렇게 축원하더라고 전하시게.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 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이라 하더라고"

  한편 하인의 말을 들은 복안장자는 즉석에서 비단 50필을 불사에 보태라며 시주하였다.

  이 복안장자의 집에는 또 다른 하인 모자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결조라 했고 아들은 대성이라 했다. 이들 모자는 원래 모량리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가장에 세상을 떠나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복안장자의 집안에 들어가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마음씨가 후덕한 복안장자는 논밭 몇 마지기를 떼어내어 이들 모자에게 주고, 또한 해마다 새경을 후하게 베풀었다.

  대성도 이제는 소년티를 벗어나 열댓 살이 되었고, 어엿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머리도 매우 총명하여 복안장자는 대성을 지극히 총애하였다. 때마침 복안장자가 시주하는 것을 지켜 본 대성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어머니 경조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매우 중요한 일이 있어요."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

  "네, 흥륜사에 계신다는 점개스님께서 화주를 하러 내려오셨는데 그 스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축원을 하고 계셨어요."

  "재미있는 축원?"

  풀을 뽑던 여인은 아들의 말에 호기심이 났는지 손을 털며 아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소년 김대성이 말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일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이요,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를 베풀어 만배를 얻는다고요, 어머니!"

  "그래, 그렇기는 하다만 우리가 뭐 가진게 있어야 보시를 하든 말든 하지."

  "어머니, 우리는 복안장자가 주신 논밭 몇 마지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 논밭을 부처님께 바치면 어떨까요?"

  여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나마 있는 논 밭을 불전에 시주하면 우린 뭘 먹구 사느냐.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구나."

  "어머니, 우리는 복안장자의 집에 있는 한 먹고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제 말대로 그렇게 하셨으면 해요. 우리가 금생에 이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도 모두 전생에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만일 금생에 또 베풀지 않으면 내생에는 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 그렇게 하세요, 어머니."

  여인은 아들의 보챔을 이기지 못해 허락하였다.

  "그래, 네 소원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

  대성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논밭 문서를 들고 가서 점개스님에게 바쳤다.

  "우리의 전 재산이에요. 부처님께 잘 기도해 주세요."

  점개 스님은 대성이 올리는 밭문서와 논문서를 받고 축원하였다.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니, 너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아무 염려 말거라. 너는 네가 베푼 것의 만 배 이상을 얻으리라."

  소년 김대성은 마음이 흐믓했다. 세상은 버린 자의 것이라던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모두를 버릴 때 모두를 얻는다고 했다. 주려 끼고 있으면 마음은 그 끼고 있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한낮의 햇살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며 들판이고 계곡이고 집이고 산등성이고를 가리지 않고 비쳤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김대성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경조는 땅을 치며서 통곡했다.

  "불전에 시주하면 시주한 것의 만 배를 얻고 길이 안락하며 천신이 가호하고 장수를 누린다더니 말짱 헛말이었구나. 세상에,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그 어린 나이에 데려가다니,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얼마를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에 아들 대성이 나타나 말했다.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소자는 이제 우리가 불전에 시주한 공덕으로 서라벌 김문량의 가문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업에 이끌려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라 복 지은 인연 공덕으로 짐짓 몸을 버리고 새 몸을 받아 나는 것입니다. 어머니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열 달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대성아! 대성아! 대성아! "

  사라져가는 대성을 부르다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녀는 꿈이 하도 선명하여 서라벌의 대신 김문량 댁을 언젠가 방문해 보리라 마음 먹고 대성의 장례식을 간소하나마 정성껏 치렀다.

  한편 서라벌의 대신 김문량은 적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벼슬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아들을 얻지 못해 늘 그것이 근심이었다.

  (내 비록 재상이 되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으니,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은들 어디에 쓰리오. 어찌하면 아들을 얻을 수가 있을까?)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공중에서 소리가 있었다.

  "재상 김문량 공이여! 너무 그리 고적해 하지 마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그 대신 그대는 부처님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큰 원을 내시오. 그러면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아들을 얻도록 가피할 것이외다."

  김문량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햐해 문을 활짝 열고 마루 끝에 나서며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추녀 끝으로 보이는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아들을 얻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해 큰 불사를 하도록 하시오."

  김문량이 소리 나는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말을 마치고 표표히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영락없는 관세음보살이었다. 재상 김문량은 관세음보살이 사라진 곳을 향해 수없이 절을 했다. 그 산이 바로 남산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안 되어 김문량은 다시 꿈을 꾸었다.

  "모량리의 김대성이가 그대의 집에 태어나리니 잘 길러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시오."

  김문량이 꿈을 깨고 다시 부인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자 부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다만 부인의 꿈은 몇 마디가 덧붙여 있었다고 했다.

  "그 김대성이 본디 모량리 사람인데 서라벌의 갑부 복안장자의 집안에 살고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경조라고 한다. 그 김대성이가 오늘 아침나절에 몸을 버리고 그대의 태내에 들었다." 

  부인과 자기의 꿈을 종합하여 검토한 김문량은 사람을 시켜 복안장자네 집에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이윽고 하인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주인대감 내외분께서 꾸신 꿈이 그대로 사실이옵니다. 김대성이는 열댓 살난 소년이었는데 오늘 아침나절 갑자기 세상을 하직했다 하옵니다.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과연 그 일이 있고 나서 김문량의 부인은 태기를 느꼈다. 유달리 입덧을 심하게 하는 부인을 보고 김문량은 틀림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부인의 입덧이 있고 7개월쯤 지나 부인은 아기를 낳았다. 순산이었다. 그런데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주먹을 말아 쥔 채 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아기가 주먹을 펴지 않아 김문량은 점술가를 불렀다. 점술가가 말했다.

  "이 아기는 전생의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는 절대로 손을 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전생에 누구였는가를 증명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니 이 아기의 전생 어머니를 부르십시오."

  "허, 그것참! 여봐라. 이 서라벌 내의 갑부 복안장자의 집에 가서 경조라는 여인을 모셔오도록 하라."

  "에이"

  분부를 받은 하인이 복안장자의 집에 이르러 경조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러자 아기는 태어난 지 일 주일밖에 안 되어는데도 생글 생글 웃으며 주먹을 폈다. 그런데 그 손바닥에는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문량은 비로소 모든 것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아이의 이름을 그냥 대성이라 부르게 하였다.

  대성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머리가 총명하여 열두서너 살이 되자 이미 학문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고 또 무예를 익혀 활쏘기, 말달리기, 창과 칼쓰기와 수레몰기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사냥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날이 어두워져 더 갈수가 없게 되자 대성은 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곰 사냥을 하고 난 대성은 들뜬 기분에 잠도 잘 오질 않았다.

  (아! 나는 곰을 잡았다. 나는 곰을 잡았다구 아마 서라벌안에서 나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은 없을걸.)

  그러다가 그는 잠이 들었다.

  (으악! 곰이다 곰!)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곰이 말을 했다.

  "나는 네가 죽인 곰의 귀신이다. 네가 나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죽이리라."

  대성은 땀을 비오듯이 흘렀다. 대성이 마구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말했다.

  "네가 곰의 귀신이라면 정말 미안하다. 나는 죽는게 그다지 섧지가 않다. 다만 나는 전생의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렴."

  곰 귀신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헀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딱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나는 내 원수를 갚아야 겠다."

  곰의 귀신이 다시 달려들었다. 곰 귀신은 실제 곰보다 더 무서웠다. 더 날렵했고 더 컸다. 게다가 곰 귀신은 말을 할 줄 알았다. 대성이 생각했다.

  (나는 전생에 하도 가난하여 어머니에게 졸라 논 밭 몇마지기를 흥륜사 스님께 보시하고 금생에 그 공덕으로 명문대가 재상의 집안에 태어났는데 이제 와서 곰의 귀신에게 영락없이 죽게 되었구나 어찌한다?)

  그에게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곰 귀신이여! 내가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하면 나를 안 잡아 가겠는가? 가령 절을 지어준다면 어떻겠느냐?"

  절을 지어 준다는 말에 곰 귀신은 달려들던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절을 지어준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 만일 절을 지어 나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 주고 또 나와 같은 모든 살아 있는 산짐승을 마구 죽이지 않은다면 그도 손해날 것 같지는 않구나. 꼭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꼭 그렇게 하겠다. 나만 잡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냥도 하지 않겠다. 미안하다 곰귀신이여!"

  꿈을 깨고 난 대성은 그길로 화살을 꺾어 버리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곰 사냥을 했던 자리에 절을 짓고 장수사라 이름하고 곰 귀신 천도재를 올렸다.

  대성이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가자 대성의 전생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도 모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느날 대성은 부인을 불러 의논했다.

  "여보 부인! 부모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고 했소. 나는 전생의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살았는데 이제 그분들이 모두 세상을 뜨셨구려. 내 들으니 부모님 위한 가장 좋은 효도는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열심히 지극 정성으로 재를 올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던데 당신 생각은 어떠하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절을 짓도록 하시지요. 어차피 재산은 있는 것이고 당신도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대성은 부인의 말에 크게 감격했다.

  "고맙소 우리가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겠소? 우리, 있는 재산을 모두 털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부모님의 명복을 빌어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김대성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다. 토함산 중턱 동쪽 기슭에는 석굴암을 지어 전생의 부모님의 명복을 빌었으며 토함산 남쪽 자락에는 불국사를 지어 금생의 부모님의 명복을 빌었다.


250*250
250*250
Posted by 최 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