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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 삼국유사


어머니를 잃고 나자, 일연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오로지 역사책을 쓰는 일에 마지막 생애를 바치기로 하였다.
일연은 나라에서 받은 땅에 '인각사'라는 절을 지었다. 그리고 그 절에 혼구와 죽허를 비롯한 여러 
학승들을 모이게 하였다.
일연은 이 절에서 역사책을 완성하고, 다른 학승들도 학문을 닦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인각사에 자리를 잡은 일연은 두 제자를 데리고 단군왕검의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이야기도 쓰고 싶었지만 이미 자료가 많이 묻히고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단군왕검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단군왕검은 중국 황제의 아들이 아니었다. 원래 우리 한민족의 시조로 중국과 맞서는 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확실히 쓰고 싶었다. 

일연이 여기저기에서 모은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고조선의 세력이 중국보다 더 컸다.
일연은 눈이 침침하면 눈을 찬물로 씻어가며 책을 써 내려갔다. 간혹 꿈 속에 단군왕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원효대사가 보이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광개토대왕이 흰 말을 타고 나타나 멀리 
중국땅을 가리키며 저것이 우리 땅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글을 쓰면서 일연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치 옛날 자신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들의 눈에는 그런 스승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혼구와 죽허는 스승의 그런 모습을 닮고 싶었다.
일연은 손을 조금씩 떨면서 흰 종이 위에 가는 붓으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러면 혼구는 스승이 
써준 글을 새 종이에 옮겼다.
죽허는 마치 팔만대장경을 새길 때처럼 정성을 들여 그것을 목판에 새겼다. 작은 글씨가 촘촘하게 차 있는 
종이를 모아 책으로 엮어나갔다.
책을 만드는 동안 혼구는 일연에게 질문을 많이 하였다.
"스승님, 우리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책에는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만 기록한 것도 있는데 이것도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일연과 혼구는 책을 쓰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죽허 또한 그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책을 만들다 말고 밤새도록 이야기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연 못지 않게 혼구도 이미 상당한 학식이 있었다.

일연이 정신이 가물거려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혼구가 대신 쓸 정도였다.
특히 혼구는 고구려, 신라, 백제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조선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이 부분의 내용을 쓸 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연은 어느덧 네 권의 책을 쓰고, 다섯 권째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완성한 네 권의 책 내용은 이러하였다.
제 1권과 2권은 '기이' 편으로 나라를 세운 왕들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다. 1권에는 고조선과 동방의 작은 나라와 삼국통일 전까지 신라의 역대 왕에 관한 이야기를 적었다. 마한, 낙랑, 부여 등의 나라가 세워진 이야기라든지,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제 3권은 '흥법'과 '탑상'편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흥법'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각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도 여기에 넣었다.
'탑상' 편에는 각 절의 불탑이나 종, 불상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적었다.
황룡사의 구층목탑이나 문수사 석탑에 얽힌 이야기 같은 내용이 여기에 들어갔다.
제 4권은 '의해' 편을 실었다. 여기에는 원광법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 신라의 이름난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았다.
이제 일연은 제 5권을 쓸 차례였다.
"스승님, 이제 마지막 권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쓰실 건지요?"
혼구가 일연에게 물었다.
"우선 네 부분으로 나눌 것이다. '신주' 라하여 신통한 이야기를 적을 것이고, '감통' 편에는 도술을 부려 하늘의 해를 없애버리거나 왜적을 물리친 이야기를 실을 것이다. 또한 '피은' 편을 두어 속세를 떠나 숨어 살면서 노래와 시를 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기록할 참이다."
일연의 설명에 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죽허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부모님께 효도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습니까?"
"허허, 그렇구나. 암, 써야지. 그런데 죽허가 어떻게 그 생각을 하였을고?"
일연은 죽허를 놀리듯 말하였다. 죽허는 평소에 너무 말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스승님께서 고향에 내려가 어머님을 모신 일이 생각났습니다."
죽허는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부끄럽구나... 그러고 보니 죽허가 아버지를 보살피던 일도 생각이 나는구나, 허허. 그러면 효선편을 넣어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인 선행에 대한 미담을 넣도록 하자."
일연과 죽허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옆에 있던 혼구도 따라서 큰 소리로 웃었다.
"허허허..."
"껄껄껄..."
방 안에서는 한동안 웃음소리가 시원스럽게 울려퍼졌다.
일연과 두 제자에게는 역사책을 쓰는 일이 큰 기쁨이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일연은 아홉 살에 집을 떠나 70년 가까운 세월을 힘들게 견뎌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열매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연은 붓을 놓고 두 제자를 불렀다.
온힘을 쏟은 끝에 드디어 다섯 권의 책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었다. 일연은 책의 이름을 '삼국유사'라고 지었다.
삼국유사라 씌어진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일연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자신의 
한평생을 담은 책이었던 것이다.
일생 동안 보았던 고려의 많은 것들, 많은 이야기들...
일연은 그 책을 가슴에 한번 대어보았다. 향긋한 먹내음이 났다.
일연은 이 책이 고려의 혼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부처님에게 빌었다.
일연은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제자를 불렀다.
"자,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물론 역사를 다 다루지 못하고 빠진 부분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몽골족의 침략으로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영광을 다시 찾아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몽골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의 영전에 고이 바친다. 그들의 값진 죽음이 바로 이 책을 만든 힘인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의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잘 기록해줄 것이다."
일연은 어느덧 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두 제자는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늙은 스승은 수염은 물론 눈썹까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 동안의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하였다.
두 제자는 그런 스승의 모습을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일연이 큰 소리로 말하며 웃었다.
"이놈들아, 너희들 머리털도 벌써 허옇게 세었구나, 껄껄껄."
"허허허..."
두 제자도 따라 웃으며 서로 자기 머리를 만졌다. 
머리털이 잡힐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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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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